쌉싸름한 여행기/2012 인도

영화 속으로 3-<조다 악바르>, 파테푸르시크리

단이슬 2013. 9. 5. 20:52

 

2008년에 개봉했던 <조다 악바르>에는 암베르 성과 아그라 성이 주로 나온다. 

의상과 장신구가 워낙 화려하고 배경 역시 대륙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영화인데, 

인도인들의 정서적 바탕이라는 달달한 사랑 이야기와 해피엔딩까지 있다.

그 때문에 인도에 대해, 또는 인도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추천할 수 있다. 


파테푸르시크리는 아그라 가까이에 있는 옛 도시다. 

영화의 주인공인 악바르 황제와 조다 바이 왕비의 이야기가 곳곳에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그라에서는 불과 37Km 거리라는데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이 조금 안 되게 걸린다. 

버스 스탠드에 가서 목적지를 외치면 차장을 비롯한 숱한 인도인들이 

언제든 친절하게 안내를 하곤 하니 걱정은 패스!


여기는 나도 처음 가는 곳이었다. 

가이드북에서 안내를 보고 가 보자고 마음을 먹었고, 

아그라에 도착한 날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해도

느긋하게 관광다운 관광을 했던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채 안되게 달리면 시장통 입구에 있는 버스스탠드에 내려준다. 

버스에는 우리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더러 있어서 

로컬 버스를 타는 약간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이미 군데군데가 무너진 성곽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따라 버스가 달렸기에 

'버려진 영광의 도시'에 대한 기대가 커져 있었다. 


버스 스탠드 옆으로 나 있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먼저 위의 광장으로 갈 수 있다. 

여기는 입장료가 없는데, 

대신 이슬람 사원이 있는 곳이므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을 맡기면 돈을 내야 하는데, 들어갔다가 그 문으로 나올지 알 수 없어서

우리는 신발을 들고 들어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남문으로 들어가서 동문으로 나오는 것이 관람 코스기 때문이었다. 


광장은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엄마를 한 자리에 세워 두고 내가 동서남북으로 뛰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 방법은 곳곳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피곤한 엄마는 한 자리에 서서 카메라를 따라 돌아 서기만 하면 되며, 

종종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가 크게 웃는, 보너스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여기는 '조다 바이 성'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었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규방이었지만

벽과 기둥 어느 곳도 그저 내버려 둔 곳이 없다 싶을 만큼 아지랑이같은 조각이 아름다웠다. 

잠시 앉아 쉬는 엄마에게 가이드 북을 읽어드렸는데, 내용인 즉슨


"인도 대륙을 통일하고 평화로운 정책으로 힌두스탄을 융합시켜 가던 이민족 왕 악바르에게 

고민이 있었으니 후계가 태어나지 않은 것이 그것이었다. 

왕이 존경하던 이슬람 성자가 도읍을 옮기면 자손을 볼 것이라는 예언을 했는데

그의 조언을 따라 성을 짓고 정부를 옮긴 곳이 바로 파테푸르시크리였다. 



정말 이 곳으로 도읍을 옮긴 후 정비인 힌두스탄 조다 바이 왕비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예언을 한 이슬람 성자에 대한 황제의 신임은 두터워졌다. 


그러나 새로운 도읍에 약점이 있었다. 

바로 수도 인구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물이었다. 


수로를 새로 확충하고 치수사업을 벌였으나, 강이 있는 아그라와 비교할 수 없어서 

결국은 다시 수도를 아그라로 옮겨갔다.

그 후로 파테푸르시크리는 '잊혀진 도시', '버림받은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성을 짓다보니 계획 도시처럼 일괄적이고 정연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궁전 건물들이 모여서 거대한 성을 이루었다.  



먼저 들어갔던 광장의 북쪽 마당에 있는 하얀 대리석 사당은 

왕에게 조언을 했던 힌두 성자의 무덤이라고 했다. 

그 역시 타지마할을 지을 때 롤모델로 삼았다고 할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과 장식으로 둘러싸인 곳이라는 설명을 봤는데, 

규모는 확실히 작았지만 채광창이 되는 외벽의 창문이 경이로왔다. 

어쩜 돌을 조각해서 구멍을 내면서 저렇게 깨지지 않게 잘 다듬었을까, 

잘 모르는 눈으로 봐도 신기했다. 


다시 한 번 모델은 한 자리에서 돌기만 하면 되는 사진을 찍은 곳은

성의 중심부인 '근정전 마당'이었다. 


'5층 궁전'이라는 뜻의 판츠 마할과 

악바르 황제가 집무를 보는 한 편 여러 대신과 사절들을 접견했다는 정사각 건물이 

인상적이었던 이 마당은, 동선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높게 솟은 월대가 있다. 

우리는 구경을 잠시 미루고 이 월대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사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그지없는 포인트라 그랬는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다음으로 들어갔던 곳은... 정확한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데,

이름은 '페르시아'였으나 느낌은 자금성같은 곳이었다. 


사방 벽의 위쪽을 꾸민 감실은 확실히 페르시아 느낌이었는데, 

그 아래쪽에 눈이 어지러울만큼 화려한 조각으로 빈 틈 없이 꾸며놓은 것이

한중일 수묵화의 주제가 될 법한 풍경들이었기 때문이다. 


외국 사절들이 오면 이 방에서 머물도록 했었다고 하는데, 

포도넝쿨이나 모란, 사군자를 떠오르게 하는 장식 조각이 다른 건물의 그것과는 달라서 

이채로운 곳이었다. 



연못을 배경으로 큰 창이 나 있는 회랑을 지나서 



마당 저편에 있는 왕의 집무실로 들어갔는데, 



밖에서 보는 위용과는 또 다른 내부였다. 


차가운 돌덩어리를 가져다 집을 짓는 사람들이지만 

그 붉은 빛깔의 열정과 정교하고 세밀한 정성으로 

서로 다른 민족이 어우러져 이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었고 

또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노라고 

그 건물이 아주 큰 소리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방문하는 누구든 그 옛날 이 궁전을 지은 황제가 품었던 뜻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라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화려한 영광의 세월이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울만큼 아름답던 곳, 파테푸르시크리. 


여기를 다녀올 적에도 생각했었다. 

인도 여행에 꼭 필요한 것은 피로를 모르는 두 다리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