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름한 여행기/2012 인도

라즈기르4- 1차 결집의 성지 칠엽굴

단이슬 2013. 9. 11. 21:37



오늘은 내내 라즈기르에서 헤맸다. 

뾰족한 이유도 없이 그곳에서 답사했던 성지를 돌고 돌았다. 


그 와중에 콕 집어 떠오른 곳은 영축산과 칠엽굴이었는데... 



칠엽굴은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

그러니까 베누반 옆에 있는 산 중턱에 자리잡은 동굴을 말한다. 


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사라지지 않은 카스트를 볼 수 있는 온천을 지나서 



산을 올라가야 한다. 


영축산도 그렇지만 딱히 그늘이 없는 산길은 무척 힘들다. 

사진을 보면서도 그 날 가쁘게 내쉬었던 더운 호흡과,

오늘의 서늘함에도 느껴지는 것 같은 구슬땀이 떠오른다. 



다행히 길은 하나지만, 산 정상에 거의 다다라서 오른쪽으로 한 번 빠져야 한다. 

높은 곳에 오를 수록 밀도가 높아지는 힌두 사원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찾지 않는 길임에도 또렷하게 3년 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한 번 접어들고서야 알았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보이던 산이 곧 칠엽굴이 있는 산이었고, 

그것도 굴을 바로 마주 볼 수 있는 방향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더운 날 그렇게 힘들게 산을 올랐는데도 엄마는 웃었다. 


뚜렷한 흔적 하나 남은 것 없는 곳들임에도 

환희로와 하는 엄마의 모습에 감동받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칠엽굴!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전설 속의 불효자 왕 아자타 사트루는 그간의 잘못을 반성했다. 

그리고 스님들을 청했다. 

남아있는 불교 교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돕겠다고 했다.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검소한 삶으로 덕망이 높았던 가섭존자는 

남아있는 제자들 중에서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들을 모았다. 

제 1차 결집이라 이름하는 역사적인 자리에 모인 이는 모두 500명.


그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셨던 가르침을 한 자리에 모아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었다. 

각자 모였던 자리가 달랐고 들었던 법문이 달랐다. 


오직 한 사람, 25년 동안 부처님을 지척에서 모신 총명한 시자 아난존자가 달랐다.

그는 여지껏 들어 온 모든 법문을 기억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행이 모자라 아직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가섭존자가 대중을 설득했다. 

일주일의 시간을 아난존자에게 주었고, 

꼭 일주일동안 용맹정진한 아난존자는 드디어 깨침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하여 저 칠엽굴에 다른 아라한들과 함께 들어가서 

그동안 들었던 부처님의 말씀을 곱씹어 말했다.


그래서 경전은 이렇게 전한다. 

"여시아문: 나는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널어 놓았던 빨래를 걷으러 호텔 옥상에 올라가서 

아득한 칠엽굴을 배경으로 엄마 사진을 다시 찍었다. 


사실, 칠엽굴은 말이 굴이지 들어가 보면 좁디 좁은 바위 틈일 뿐이다. 

그런 곳에 500명은 커녕 다섯 명도 들어가면 줄을 서야 한다. 

마지막에 들어간 다섯 번째 사람은 굴의 끝을 구경도 못한 채 

먼저 들어간 사람을 위해 돌아서서 나와야 

다른 사람들도 밖으로 나올 수 있을 정도다. 


박쥐 똥 냄새만 가득한 그 굴의 상태는 이미 3년 전에 보았지만

어쩐지 믿을 수 밖에 없었다. 

500명의 기적이 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거라고 말이다. 



호텔 옥상에서 밖을 바라보다가 하루 종일 우리가 전세 냈던 마차를 찾았다. 

어두웠지만 우리는 얼른 밖으로 나와서 

새로 단장한 그의 마차를 배경으로 새신랑 마부와 사진을 찍었다.


단 한 마디도 영어라곤 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비하르 사람.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삭발은 했지만

예쁜 색시가 도시락을 챙겨 줘서 행복한 청년.

내내 친절하게 웃으면서 우리의 긴 참배를 기다려준 그 마부처럼

뒷발길 한 번 차지 않고 온종일 우리를 태워 준 온순한 말 마저도 

그 기적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인도 특유의 냄새와 시끄러움이 분명한 곳이었지만

우리네 시골처럼 느긋하고 낙낙한 여유가 있어서 

다시 떠올려 보면 외할머니 살 냄새가 묻어 있는 곳만 같다. 


그 익숙하고 따스한 기운이 곧 내가 믿은 기적의 시작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