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름한 여행기/2012 인도

생활의 발견, 혹은 아줌마

단이슬 2013. 3. 2. 13:48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줄인 것은 옷이었다.

사실 스님네 옷은 색깔과 디자인이 똑같긴 하지만 상황과 장소에 따라 입어야 할 옷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성지에서 반드시 수해야 할 가사가 한 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적삼과 조끼,

조금 격을 갖춰야 할 경우에 입을 동방 한 벌(두루마기처럼 고름이 달렸지만 전체 길이가 엉덩이를 덮는 옷),

편의상 허리띠와 대님을 생략한 고무줄 바지 두 벌.

 

또 스님네 옷이 회색이라 때와 먼지에 강할 것 같지만,

정작 얼룩 표시도 잘 나고, 더러움도 잘 타서 참 애매한 경우가 많다.

여름옷을 중심으로 짐을 싸다보니 상대적으로 부피는 줄일 수 있었지만,

북쪽으로 향하는 여행길에서의 추위도 감안해야 하는, 또한 복합적인 상황이었다.

뭐... 그렇지만 내가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옷이었다.

빨아서 입지 뭐, 하면서 내 옷은 줄이고

여행 사진 대부분의 모델이 될 것인 엄마 옷은 다양하게 챙겨 넣었다.

그 덕에 우리 엄마는 트래킹을 하면서 분홍바지에 연두색 파카, 노란 조끼로 멋을 낼 수 있었다! ㅋ~

 

대신에 챙겨간 것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두 컵 분량의 전기포트와 손바닥만한 다리미,

세 개의 두루마리 휴지였다.

또 미처 몰랐던 우리의 정직한 허기를 채운 즉석 비빔밥과

출발 직전 왕창 생겨서 엄청 넣어갔던 건빵이 여행 내내 큰 도움을 줬다.

 

여담이지만, 대한민국 건빵 만세!다.

군법사로 계시는 스님이 군대용 건빵을 한 박스 보내 주신 것이 있어서

가방에 몇 봉지 넣었는데, 4개월 동안 갖고 다닌 마지막 한 봉지까지도

그렇게나 이리 저리 쑤셔 넣는데도 포장이 터지지 않아서 얼마나 장하다 싶던지...

 

그리고 인도에서 발견한 생활의 지혜.

뭐, 그렇게 거창하게 생활의 지혜랄 것도 없다.

 

인도에서는 어디를 가건 구멍가게를 만날 수 있다.

생수부터 과자 비누, 가방 묶을 체인이나 열쇠까지

원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찾다보면 없는 것이 없는 구멍가게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형태는 대략

 

 

위와 같다.

 

저 집은 쉬라바스티에서 틸라우라콧으로 가던 길목에 들른 짜이 가게 옆집이었는데,

나름 깨끗하고 정갈한(!) 가게였다.

북인도의 저 유명한 "뽀또 머니"를 요구할까봐서 멀리서 찍었는데,

저런 가게 어디서든지 주렁주렁 달려있는 다음의 것들을 볼 수 있다.

 

 

어릴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 먹었던 불량식품이 떠오르는

저 주렁주렁 시리즈에는 샴푸 린스를 비롯한 각종 비누 종류들이 담겨있다.

 

처음 스리랑카에서 가지고 갔던 작은 통의 샴푸를 다 써버린 엄마는

아누라다푸라의 조그마한 가게에서 샴푸를 한 통 샀었다.

큰 거 사 봐야 짐스럽기만 하다는 이유였는데,

실수였다.

인도에서는 그렇게 통에 든 세제를 찾기가 힘들었다.

분명히 영화배우들은 통에 든 샴푸를 선전했는데,

실상은 저렇게 1회용이 대부분이었다.

 

대신 좋은 것은 바로 요 것!

 

 

한 봉지에 1루피! 단 돈 1루피!

업그레이드 된 세척력을 자랑하는 2루피짜리 가루세제도 있지만,

이 것으로도 빨래 끝~을 외치며 손을 털기엔 그만이었다.

 

웬만큼 비싼 숙소가 아니라면

스인네 어디든지 욕실에 꽤 큼직한 양동이가 있다.

꺾어진 손잡이가 달린 작은 바가지를 걸어둔 플라스틱 양동이에

위의 세제를 한 봉지 뜯어 넣고,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 물을 받는다.

 

어떤 집은 한 양동이를 다 받도록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지만,

대부분의 경우 빨래를 담글만큼 물을 받으면

따뜻한 물이 나온다.

그러면 얼른 빨래를 담가두고, 샤워를 한다.

 

두 사람이 좋은 점,

엄마와 딸의 여행이 좋은 점은 요럴 때 한 번 더 드러난다.

엄마가 씻는 사이, 나는 커튼 밖에서 빨래를 밟는 거다.

 

출가하고 손빨래는 종종하는 일인지라

밟아서 하는 빨래 정도는 일도 아니다 싶은데,

그래도 엄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한 번씩 거들겠다고 나서곤 했다.

그런데 또한 각자의 장점은 따로 있는 법.

난 빨래를 잘 못 짠다.

손 힘은 센데 팔은 그러질 못한 건지,

엄마가 하는 얘기로는 빨래를 그냥 손으로 꾹 잡았다 놓는 것 같다고 했다.

대신, 엄마는 빨래를 잘 짠다.

내가 꽉 짜 놓은 것도 엄마가 짜면 물이 한 바가지 떨어지곤 했다.

 

그렇게 품을 앗아가며 빨래를 할 때면,

좀 과장해 가며 놀라곤 했었다.

하루 입은 옷에서 어쩜 그렇게 새카만 물이 빠져 나올 수 있는 지,

처음 비누칠을 해서 빨았을 때랑은 느낌이 달랐다.

밖에 다니면서 뒤집어 쓴 흙먼지와 보기에도 새카만 매연이

비눗물을 그렇게 만들었지 싶다.

 

그리고 새삼 느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고

인도에 가면 인도 세제를 쓰라고.

 

우리나라랑은 물이 틀려서 해외에서 우리나라 비누를 쓰면 거품이 잘 일지 않는다는 말을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

요즘에야 워낙 다국적기업들이 이것저것 팔아대다 보니

인도 구멍가게에서도 팬틴 샴푸며 데톨 비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갖고 간 비누도 제 기능을 다 했지만,

현지에서 싸게 구해서 쓸 수 있는 마음 넉넉한 가루비누가 참 마음에 들었다.

 

엄마랑 난, 인도 여행하는 이들은 누구나 이렇게 하는 줄 알았다.

TV를 보면 LG세탁기 협찬을 받아 선전을 하는 세제 상표도 주렁주렁,

우리나라에도 있는 헤드&숄더 샴푸도 주렁주렁,

게다가 가격은 1루피.

 

그런데 여행 중에 만난 청년은 가지고 온 비누며 샴푸를 다 써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함께 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엄마와 내가

이 주렁주렁을 얘기해 줬는데,

그날 저녁, 우리는 새로운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어쩌면...

아줌마와 딸의 여행이기에

이 도리를 알았을 지도... 라고...

늘 쓰던 사람이라 그런 것이 눈에 보였을 지도 모른다고... 

 

과연, 그랬던 걸까?

아는 만큼만 보고,

보고싶은 만큼만 보고 온 걸까?

 

 

사진은 인도에서 찍었는데,

스리랑카에서 산 모기향이다.

12시간 지속된다는 강력한 모기 박멸 효과를 자랑한

날카로운 눈매의 닌자 아저씨가 모델인 "니니아"

처음 스리랑카에서 손톱만한 모기에 놀라 마트에서 구입한 후,

가장 확실한 효과를 본 것은 쿠시나가르 스리랑카 절에서였으니,

^^

스리랑카 모기향 맞다!

 

한 통을 사서 부서지지 않게 조심조심 잘 모시고 다닌 덕에

네팔에서의 마지막 일정까지 함께했던 소중한 파트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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