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보살님을 만난 것은 보드가야였다.
이른바 시즌을 맞기 시작한 보드가야에서 숙소를 구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렵게 어렵게 마음에 드는 숙소를 잡아놓고 엄마와 배낭 하나를
오토바이에 태워 보내놓고, 그 오토바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누가 봐도 한국인인 사람이 저 앞에서 나에게 시선을 꽂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어색한 첫 인사.
우선 고려사(보드가야의 한국절)에 짐을 푼 보살님도 숙소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서
우리 숙소를 추천했는데, 다음날이었나, 이틀 뒤였나,
우리 숙소에서 뵐 수 있었다.
혼자서 인도 성지순례 중이라고 헀던 보살님과는 나중에 쉬라바스티에서 다시 만나
네팔로 국경을 함께 넘은, 동지였다. ^^
인도에 갔을 때 나는 <100배 즐기기>를 갖고 있었는데,
이 책, 지도가 참 빈약했다.
그 사실은 영어판이긴 했지만 <론리 플래닛>을 들고 스리랑카를 여행한 다음이라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게다가... 난 길치 아닌가 말이다.
약도에 가까운 지도를 들고 마냥 헤매기란... 나로선 참 어려운 일이었다.
김 보살님은 우리글로 된 <론리 플래닛> 인도 책을 갖고 있었는데,
그 책에는 100배에 없는 보드가야 인근지역 정보가 있었으니,
내가 다시 가 볼 수 없나보다 하고 얼마간 마음을 놓아버린 '가야산'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불교 성지순례로 보드가야를 방문하면 인근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대표적인 곳은 고행을 포기한 수행자 싯다르타가 마을의 처녀 수자타에게서 우유죽을 공양 받은 곳으로 알려진
수자타 마을이 있고,
우유죽 공양 후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가 수행의 장소로 찾아갔던 전정각산 유영굴이 있다.
그리고 한 곳을 더 꼽는다면 바로바로 가야산, 브라흐마주니 힐이 있다.
이곳은 정각을 이룬 부처님이 네란자라 강 건너에 있던 배화교도(조로아스터교) 혹은
불을 섬기는 외도(뭐 그 말이 그말이다. 배화교라는 말이 곧 불을 섬긴다는 말이니까...)인
*가섭 3형제와 그 형제들을 따르던 1000명의 외도들을 신통으로 설복받고,
그들 모두를 이끌어 전법의 길을 나서면서 들른 곳이라고 한다.
제자들과 산에 오른 부처님은 발 아래 펼쳐진 넓은 대륙을 바라보며 법문하셨다고 한다.
"보아라. 세상은 모두 불타고 있다.
눈, 귀, 코, 혀와 몸과 뜻이 불타고 있으며, 그 여섯 가지 대상이 불타고 있다.
이러한 접촉이 불탐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느낌까지 불타고 있나니,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불길에 의해서 불타고 있으며,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으로 불타고 있느니라.
하지만 현명한 이들은 이것들을 가벼이 여겨 집착을 떠나니,
떠나면 곧 해탈하게 되고, 해탈하면 더 이상 윤회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느니라."
불을 섬기던 이들에게 불을 비유한 법문으로 단박에 바른 길을 열어 보인 부처님.
헛헛한 벌판에 느닷없이 솟아있는 산이 있고, 그 산 위에 조금은 외로워 보이던 부처님.
다시 찾아 갈 수 없을 줄 알았던 그곳을 김 보살님과 함께 물어물어 찾던 그 날이 그립다.
보드가야에서 가야까지, 처음으로 합승 톡톡을 탔다.
늘 우리 두 사람만 실어야 하는 줄 알았던 톡톡에 무려 10여명을 태우고 보니...
아니 사실은 인도사람들에 섞여서 톡톡을 타고 보니,
불과 15루피면 보드가야에서 가야까지 갈 수 있었다.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먹을 거리가 있는 곳을 찾고 싶었는데,
그러면서 골목을 헤매다가
밥 먹기는 포기하고 브라흐마주니 힐을 물어보며 더듬더듬 찾아오다 보니
낯 익은 산이 나왔다.
올레!
마을 입구에서부터 "텐 루피 덴나."를 외치는
좀 험한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던 첫 사진...
아직은... 웃고 있다, 우리 엄마.
불자들이 많이들 찾아 온 모양이다.
여기서 멈춰 길을 꺾으라는 안내판도 생겼다.
우리는 아이들을 쫓을 요량으로 꼭대기에 있는 힌두 사원까지 다녀왔다.
아이들의 체력은...
강했다.
하지만 산 위에서 한참 바람을 쐬며 앉았는 우리가 지루했던지
몇몇은 먼저 내려가버려서
땀흘린 것이 아깝지는 않았다.
오, 부처님! 감사합니다!
불상이 금색으로 옷도 입었고, 태국 불자들이 다녀갔음이 분명한 금박도 보이고...
그 사이 울타리도 쳐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3년 전 뵈었을 때 보다 외로운 느낌이 줄어들었다.
바람에 날리는 타르쵸도 그대로,
법음을 설하신 부처님도 내 마음에 그대로,
그래...
그대로,
항상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지만
부처님 말씀을 믿는 내 마음은 그대로다!
단체로 찾았을 적에는 언제 따라왔는지 웬 늙수구레한 영감님이 천을 덮어놓고
열어 줄 때마다 돈을 요구했다.
세 사람이 찾았을 때, 흰천은 바람에 날려
산에 있는 바위에
누가 새겼는지 모를 부처님 발바닥 조각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보살님, 이게 돈 줘야 친견하는 거예요."
했더니 사정이야 어떻겠냐며 부처님 뵙듯 합장 반배하던 엄마.
이내 쪼그리고 앉아서 자세히도 살펴 본다.
"스님, 우리가 진짜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 다니고 있긴 한 가 봐요."
브라흐마주니 힐은 김 보살님이라는 인로왕 보살 덕에 생각보다 훨씬 훨씬 쉽게 찾아간 곳이었다.
나와 엄마 두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예 길을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뭔가 요행을 바랐다면 보드가야에서 '실크로드 여행사' 팀을 만나길 바랐을 것이고...
<론리 플래닛>의 지도가 우리 손에 있긴 했지만,
가야로 들어서던 초입 어디선가 우리를 떨어뜨려 놓고 유유히 사라진 톡톡의 뒷모습이나,
오직 마켓을 찾아 씩씩하게 앞장서던 김 보살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여긴 어디? 나는... 어디로...?" 했던 황당함을 잊을 수 없다.
게다가 돌아오던 길의 황당함은 또 어떻고!
가야에서 보드가야... 구글에서 검색할 때는 부다가야라고 해야 나온다.
부다가야로 갈 때는 지도상에 있는 진한 노란색 길을 이용했다.
브라흐마주니 힐을 찾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알고보니, 네란자라 강을 따라서 연한 노란색으로 뻗어있는 길이 있다.
그 길이 훨씬 빠르고 손 쉽게 두 곳을 이어주고 있었다.
이 길로 우리를 인도했던 또 한 명의 인로왕 보살은 바로바로
한국절 고려사의 공양주 처사님!
하루 묵어 얼굴을 알았던 김 보살님을 보고 친구가 운전하는 톡톡을 불러서는
안전 운행과 합승금지를 목 놓아 외쳤던, 게다가 요급 협상까지 앞장 서 주신 처사님,
그 때 미처 다 말 못했지만 "단녜밧~!! 보훗 단녜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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