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보디 사원 둘레의 마니차를 돌리는 엄마 뒷모습
이번, 엄마와의 배낭여행은 소원 풀이 여행이었다.
엄마는 딸 스님과 부처님 성지를 밟고 구석구석 마음에 담아 오겠다는 소원을,
딸은 단체여행에서 아쉬웠던 하지만 무척 사소한 몇 가지 바람을 풀어냈다.
솔직시 난 어디 좋은 곳을 보면 '엄마랑 가 봐야지.'라는 생각을 잘 한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신 환경 속에서도
우리 엄마는 찌들어 살지만은 앉아서, 어린 나와 버스를 타고 여행을 자주 했었다.
그 길에서 나눈 마음이 내게는 아버지를 여읜 자리를 메울 수 있는 큰 힘이었다.
3년 전 졸업 여행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도라는 곳이 편하고 쉬운 여행지는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과정 위에 부처님의 발자취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보니,
더 꼼꼼하게 둘러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꼼꼼함에 몇 가지, 사소하지만 예쁘고 맛있는 추억을 엄마와 함께 갖고 싶었다.
그중 최고는 바로바로... 보드가야에서 라씨 사먹기!!
마하보디 사원 입구에는 가게도 노점도 많다. 염주, 마니차, 조악한 솜씨부터 꽤 그럴듯한 조각상,
보리수 잎과 사원의 본존불 사진까지...
하지만 내게 중요한 가게는 오직 한 곳, 티벳 사원이 있는 삼거리에서
마하보디 사원 정문으로 난 길목에 첫번째로 있는 빨간 간판의 라씨 가게였다.
우리나라 <100배 즐기기>는 물론 <론리 플래닛>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 가게는, 라씨가 참 맛있다.
엄마는 카레에는 알러지가 있고 우유에는 과민증이 있다.
죄송하게도 30년 만에 처음으로 안 사실이었다.
그래서 짜이도 라씨도 처음 한 번씩 드셔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다행히 탈이 나진 않았지만 진한 우유향이 싫다고 했었다.
그런데 보드가야 라씨는 드셔보더니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엄마가 먼저
"스님 우리 저거 사 먹어요," 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테이크 아웃 커피집처럼 그 라씨 가게는 테이블이 없다.
가게라고 하는 곳도 배불뚝이 아저씨가 라씨를 휘저어 만들 공간과 냉장고가 들어있는 곳 뿐이다.
인도 식음료 가게 기준에서는 무지하게 깨끗하게 씨는 유리컵에
라씨를 넘치게 붓고, 나름 색색으로 갖다놓은 구부러지는(!) 빨대를 꽂아 주면 30루피짜리 라씨가 완성!
3년 전 바람대로 그 곳에서 무려 4박 5일을 지내면서
라씨 가게 주위에 놓아 둔 비뚜름한 나무 의자에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달콤한 라씨를 마셨다.
부처님 성도지에서,
그곳에 왔다는 희열에 가득 찬 불자들과 보리수 잎 뭉치를 건네는 까만 손,
또는 조그만 깡통을 내밀며 "마하라자"를 부르는 목소리,
공기의 80%를 차지한 듯한 '가루향과 꽂는 향과 등과 촛불(우리말 백팔 참회문 중)'의 향기 가운데,
아주 사소한 바람을 이루어서 즐거운 쪼매난 스님이 있었다.
마하보디 사원에 도착한 첫날 감격중인 우리 엄마
혼자서 살짝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은...
그 빨간 간판을 배경으로 엄마 사진을 찍은 줄 알았다.
혹은 그 라씨 가게 풍경이 당연히 사진 어딘가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없어서 마하보디 사원 사진으로 추억을 대신했다.
무슨 놈의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냐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더 찍었어야 했다!
아니면... 인도에 한 번 더 가야 하는 걸까?
이제는 길거리 풍경이며 나뭇가지로 양치하는 인도 아저씨 사진 등,
내게 남기고픈 인도 모습이 하나씩 더 생기고 있다.
흠... 진짜로... 사진 찍으러 한 번 더 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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