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라바스티에서는 하루하루가 하이라이트였다.
그 마지막 밤에는 천축선원의 현지인 매니저인 스콜라 처사님네 잔치였다.
벌써 며칠 전부터 처사님은 딸 시집 보낼 일정 때문에 바쁘셨다.
오죽하면 배가 다 들어가 보인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도 결혼식은 인도 여행자들에게는 유명한 행사다.
한동안은 결혼식에 외국인이 와서 축하해 주는 것을 광영으로 알았다고 하지만,
워낙 밤에 벌어지는 잔치인데다,
몇몇 사고들로 인해서 이제는 인도인들도
결혼식을 기웃거리는 외국인을 그닥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긴긴 여행 중에 현지인들의 시끌벅적한 결혼식 구경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쉬라바스티에서는 달랐다.
엄연히 한국 사찰의 매니저이고 보니 우리는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다.
결혼식은 사흘 동안 치뤄진다고 했다.
부산 정도 되는 도시 발람푸르에 사는 신랑 가족을
양산 정도 되는 쉬라바스티로 청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잔치를 시작했다고 했다.
여기서 신랑 가족이라 함은 2박 3일동안 와 있을 수 있는 모든 인원을 총칭하는 말로,
신부 아버지인 스콜라 처사님은 마을의 초등학교를 빌렸다.
무슨 용도로?
신랑 가족들의 숙소로!
둘째 날은 이미 와 있는 신랑 가족은 물론 신부 가족들도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한다고 했다.
결혼식 자체는 셋째 날 저녁에 벌어지는데,
이 날은 가족들은 물론 이웃과 친구들 등이 모두 모여 축하하는 날이며,
우리는 이 마지막 날 저녁 식사를 처사님네 집에 가서 하기로 했다.
저녁 공양 시간인 5시에 맞춰서 우리는 천축선원을 나섰다.
그동안 기원정사로 가는 큰길만 다니다가 주지스님의 뒤를 따라
유채가 한창 자라고 있는 시골길을 따라서
말 그대로 현지 마을로 들어섰다.
잔치!
신랑 신부가 앉을 상단은 생화로 장식 중이었고,
외국인 및 카메라 떼를 보고 차렷 자세로 기꺼이 주인공이 되어준 귀염둥이! ^^
음식도 세팅 중이었다.
나중에 알고 조금 실망했지만, 전면에 보이는 것은 준비가 끝난 상태인데,
우리 생각이라면 육해공이 즐비해야겠지만
인도인들은 엄연히 채식주의자들이고,
스콜라 처사님은 엄연히 브라만 계급이라고 했으니
더욱 청정한 채식을 준비하는 것이 마땅했다.
다른 하객들과 달리 우리는 저녁 시간이었다.
처사님은 우리가 배 고플 거라면서 우리를 위해서 음식을 먼저 준비하도록 했다.
저렇게 많은 반죽은, 시작일 뿐이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만큼 빠른 속도로 반죽을 펴서 짜파티를 만들어 냈는데,
저기서 먹은 짜파티는 반죽에 채소 다진 것이 들어가서 더 향긋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음식을 대접 받은 저녁이었다.
보기만 해도 단... 스위트.
엄마와 나는 길거리 음식을 그닥 사먹지 않았다. 그래서 스위트도 말만 들었지
먹은 것은 인도를 떠나기 전날인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정~말 달다!
그러면서도 각각에 들어있는 향이 달라서 궁금함에 모두 먹긴 했지만,
지금은 보기만 해도 달! 다!
놀라운 것은 접시 위의 숟가락이다.
우리는 당연히 스텐레스일 줄 알고 손에 적당히 힘을 주고 들었는데
헐~~.
빛깔만 반짝일 뿐, 플라스틱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가벼운 일회용.
이윽고 각종 커리와 라이스, 짜파티가 나왔는데
이 역시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는 앉아서 서빙을 받았다.
다른 하객들은 한참 후에야 뷔페식으로 각자 음식을 덜어 먹었다.
이날 몇몇 일찍 온 천축선원 스텝들이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는데
1류호텔 레스토랑의 웨이터 못지 않은 점잖고도 격식있는 몸짓이
고맙고도 인상적이었다.
음식은 북인도 남인도 전통 음식이 다 있었다.
첸나이에서 먹었던 시큼한 쌀빵도 있었고, 역시나 풀풀 날아가는 쌀밥도 있었지만,
밖에서 사 먹던 음식과는 다르게 모두 '맛있었다.'
어딜 가나 '많이 먹으라.'는 마음은 친구를 대하는 마음이고
상대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마음인 듯 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스콜라 처사님은 우리 상을 들여다 보며
모자란 것은 없느냐, 더 필요한 것은 없느냐를 물었다.
또 서빙하던 다른 처사님들에게 물은 꼭 미네랄 워터를 드려야 한다고 당부도 했었다.
이윽고 신부 친척들이 식사를 시작했는데, 테이블과 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객들은 접시를 들고 서서 식사를 했다.
우리에겐 충격적인 장면이었지만, 그들에겐 당연한 듯.
음식 먹는 사진을 허락도 없이 마구 찍기 미안해서 멀리서 한 장만 찍었는데,
이날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한 사리들을 마음껏 보았다.
아무래도 계급도 있고 조금 사는 집안의 잔치라 하객들도 최고로 꾸미고 온 것 같다는
총무 보살님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인도인들의 잔치는 다 이렇게 화려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신랑이 도착할 예정이라는 말에 모두 골목으로 나갔다.
골목은 각종 불빛으로 밝았는데,
여기서부터 쇼가 시작이었다.
줄무늬 스웨터는 신부의 큰아버지,
꽃 목걸이를 들고 계시는 분은 신부의 할아버지.
인도의 결혼식은 신부 아버지가 신랑을 캐스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신랑은 성스러운 순례의 길을 떠나기 위해 말(요즘은 차)을 타고 집을 나서는데,
이 때 신부 아버지가 가문이 어울리고 잘 생긴 신랑에게 넌즈시, 이윽고는 간절하게 말한다고 한다.
"나에게 정숙하고 아름다운 딸이 있는데,
그대가 순례를 떠나기 전에 아내로 삼는 것이 어떻겠나?"
신랑은 마지못해 말머리를 돌려 신부의 집으로 간다.
그렇게 혼인을 허락하는 신랑을 위해 환영의 꽃 목걸이를 신부의 아버지,
혹은 신부 집안의 남자 어른이 신랑에게 걸어주는 것이 드라마의 시작인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함진 애비가 시끌벅적한 악대와 함께 골목에서 한참이나 '놀았다'
꼭 우리나라 함 들어오는 날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이 더디기만 하다가
이윽고 그들이 마당으로 들어가자 신랑이 차를 타고 등장했는데,
그저 흥겨운 마음만 있던 우리 일행이 일제히 외쳤다.
"신랑 잘생겼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이 신랑을 보기 위해서 뛰듯이 마당으로 따라 들어왔는데,
신부가 기다리고 있는 방 앞.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 신부는 우리네 안채-그래서 남자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집
에서 예쁘게 웃으면서 우리와 인사를 나눴다.
이 때만 해도 빨간 펀자비를 입은 신부였는데,
신랑이 도착하자 한 땀 한 땀 꽃으로 수 놓고 있던 저 작은 제단 앞에서
결혼식을 집전하는 사제와 스콜라 처사님이 신랑을 맞았다.
신랑은 차에서 내려 커다란 꽃 관을 쓰고 이 자리에 등장했는데,
와우!
세상에서 그렇게 시끄러운 광경은 인도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폭죽 소리만 뺀 디왈리 정도의 소음이랄까-뭐 나중엔 폭죽도 터졌지만 말이다.
사제의 지시에 따라서 신부 아버지와 신랑은 줄을 함꼐 잡았다 손목에 묶기도 하고,
지폐를 꺼내 사제에게 혹은 신에게 주기도 하고, 신랑 주머니에 꽂기도 했다.
마치 모든 과정을 신부 본인 보다는 신부 아버지가 대신하는 듯,
인연의 고리를 묶는 성스러운 예식을 이어갔다.
그 배경 음악으로는 영화에서 보았던 "환영의 노래"를
안채에 모여 결혼식을 지켜보던 여인들이 부르는 것으로 깔려 있었는데,
신랑측은 축하의 고함소리를 지르며 저편에 서 있었고,
우리는 신부측 하객이라고 특별히 저 자리에 끼어 앉아 있었다.
사제가 집전하는 식이 끝나고,
어여쁘게 꾸몄던 단을 찍었는데,
기단이 되는 벽돌부터 그 날 직접 쌓아 장만하는 것을 보았다.
조금 전에 꾸미고 있던 신랑 신부의 자리에 신랑이 가서 앉았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꼬마들이 신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신랑 친구들로 보이는 젊은, 그리고 잘 생긴 인도 청년들이 줄을 섰다가 신랑과 사진을 찍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신랑은 싱글벙글이었는데,
드디어, 신부 입장!
오히려 민낯이 더 예뻤다 싶을 만큼 과한 화장이 그녀의 미모를 가렸다.
특히 나에게는 많이 낯선 눈썹 위 반짝이는... 좀 뭐랄까 ... 흠...
신부 역시 신랑에게 꽃 목걸이를 주었다.
저 목걸이를 들고 한참을 입장해서 단 위로 올라가 신랑에게 걸어주는데,
이 행진의 순간에 준비한 모든 조명이 켜 진듯 주위가 밝아졌고,
새색시도 참 반짝거렸다.
하지만 선 보고 세 번째 만남이 결혼식이어서 그런지,
신랑 신부 모두 조금 전과는 달리 얼굴이 굳어졌다.
특히나 신부는 그야말로 정든 집과는 안녕이요, 시집살이가 시작이니
어쨌거나 행운을 빌 따름!
하객들이 자리에 앉은 신랑 신부를 축복해 주는 순서였다.
단에 올라간 하객은 금잔화 꽃잎으로 보이는 꽃가루를
저렇게 팔을 교차시켜서 신랑 신부의 머리 위에 뿌려 주는데,
특별히 함께 간 보살님들이 우리 일행을 대표해서 단에 올라갔다.
그 가운데 우리 엄마 역시!
신랑은 신부가 들어오자 긴장한 듯 미소를 짓지 않았고,
내내 친구들 쪽을 바라보았다.
신부는 하필, 내가 사진 찍는 저 순간에 눈을 감다닛!
신랑은 의사라고 들었고, 신부는 학교 선생님이다.
신랑이 외지에서 일 하고 있어서 신부는 시댁에서 신랑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데,
인도인들은 아직도 결혼 후 신혼이 곧 연애 시절이라고 했으니,
그들 사이에 어여쁜 사랑이 꽃피고 평화로운 '함께'가 가득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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