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 씨에게
제주도에 가면 제주시에 있는 동문시장에를 꼭 가 보세요.
전국 팔도, 시장 재미 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 하지만 제주도 동문시장은 정말 색다른 곳이거든요.
벌써 20여 년 전이네요. 초등학생 때, 사촌 동생을 따라 처음 가 봤는데,
떡볶이로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요?
그 때만 해도 육지에서 떡볶이라고 하면 떡이랑 어묵이 전부였어요.
아직 신당동 스페셜 떡볶이도 시류를 타기 전이었고, '장' 가락국수 체인도 등장하기 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동생이 데리고 간 떡볶이 집에는 '몇 그릇'으로 주문을 받더라구요.
그러구선 비빔밥 그릇만큼 꽤 큰 대접에 담아 나온 떡볶이엔, 글쎄...
만두와 삶은 달걀이 넉넉한 떡볶이 국물에 담겨 있었어요.
그 때의 심정이란...
1) 이게 무슨 떡볶이야? → 2)떡볶이가 어쩜 이럴 수 있지?
그 후로 3~4년이 더 지나서야 스페셜 떡볶이네 라볶이네 하는 이름이 육지 분식집에 등장을 했으니,
알고보면 그들은 제주도에서 상륙한 메뉴일 거예요.
지금은 떡볶이 보다는 국수를 좋아해요.
어디든 시장에 가서 사 먹는 국수는 그 맛을 의심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동문시장 국수는, 감히 따를 자가 없다고 얘기 해 줄 수 있어요.
우선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그 국물!
현대인들의,혹은 고급 레스토랑의 기준이라면
분명 F학점을 받을 법한초라하고 덜 위생적일 것 같은 좁은 국수집이예요.
그러나 현대인의 빠른 기준으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우려냄'의 깊은 맛이 있고,
할망의 행주질이 족히 십수 년은 오갔을 맨도롬한 탁자 위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인심이 있으니,
육지에서 오랫동안 그리워할 만한 맛이리라 장담 합니다.
국수를 먹고 나면 느긋하게 시장 구경을 하세요.
디지털의 광속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제주만의 속도를 볼 수 있을 거예요.
1990년대와 2000년대 어딘가에서 느긋하게 율무차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법한 포목점,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에서 자유로운 정육점,
향수를 들먹이기엔 왠지 세련된 잡화점 등등...
그 중에서도 단순한 시골 장과 절대적으로 차이가 있는 곳은 바로 어물전이예요!!
전국에에서 가장 싱싱한 해산물이 있는 곳이 바로 제주도 동문시장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진짜' 은갈치예요.
그 옛날에도 동문시장 은갈치를 보면, 내 고향의 자랑 자갈치도 주눅들어 돌아갈 것 같았는데,
어찌나 은빛으로 반짝이는지, 흠집 하나 없는 것이 가짜 전시물이겠거니 하고 손으로 찔러보기까지 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너무나 평범한 척 누워 있는 각종 '돔' 종류와, 육중해 보이는 고등어 등이 있지만,
비린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어물전 골목을 꼭 구경하세요.
마지막으로 동문시장 어귀에서 특별한 포장마차를 찾아보세요.
일반적으로야 호떡이나 붕어빵, 어묵 등을 팔겠죠.
그런데 동문시장에서는 '빙떡'을 팔아요.
어릴적 외가에 가면 이모들이 해주던 빙떡은 제주 전통 음식이예요.
얇게 부친 메밀전에 무 나물을 얹어 돌돌 말아서 만드는게 빙떡인데, 기실 제수음식이라 그런지
먹어보면 별 맛은 없어요.
해 봐야 꺼끄러운 메밀전이고, 심심한 무 나물이 전부잖아요.
그래도 이모들이 빙떡을 부치고 있으면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따뜻할 때 하나 받아 먹고 무척이나 행복해지던 기억이 참 아련하네요.
그런데 그 빙떡이 동문시장 포장마차에 있더라는 것 아녜요.
시장의 상품이 된 빙떡은 그 옛날과는 조금 다른 맛이었어요.
아무래도 무 나물에 뭔가 변화가 생긴 것 같더라구요.
하긴... 그 정도의 '맛'도 없어서야 어디 장사가 되겠어요?
내가 너무 '맛'없는 별미로 빙떡을 얘기한 것 같지만,
제주만의 별미니, 꼭 찾아서 들어보라고 권할게요.
현주 씨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참 그립네요.
나의 외가, 제주도.
어린 시절 사촌 동생과 멋모르고 놀 땐 제주도가 다 내 것 같았는데,
사실 제주도는 내게도 관광지였나 봐요.
아직 못 가본 명소들을 손에 꼽으며, 예전처럼 제주도에 '놀러' 갈 생각을 하니 말이죠.
참, 현주 씨!
제주도에 갈 때 라면은 사 갈 필요 없어요.
그곳에도 동네 점방부터 대형마트까지 다 있는 대한민국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