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4월 1일, 아차... 만우절이었구나! 뭐... 나와는 별반 상관없는 일이니까 패스!
우리 절은 양력 1일에 법회를 한다. 그러니 어제는 4월 초하루 법회가 있는 날이었다.
법회 날이면 부처님 앞을 비롯, 각 단에 과일과 떡 공양을 올린다.
여러 신도분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법문을 청해 듣고,
비빔밥을 먹고, 단에 올라갔던 풍성한 과일과 떡을 나눠 먹는다.
조용했던 절이 떠들썩해지는, 좋은 날이다.
우리 절이 떡을 맞추는 방앗간 사장님은 오전 8시 경이면 배달을 해 주신다.
특별히 시간 약속을 하지 않는 한 그 시간이 약속시간이다.
어제도 8시가 될까말까하는 시간에 떡집 봉고차가 들어오길래
목도리를 두르고(우리 법당은 아직 춥다!) 법당으로 가려는데,
방앗간 영수증을 들고 스님이 들어오셨다.
"떡이 떡집 아저씨 말고 옆집 아저씨를 따라 왔네."
말씀이 재미있어서, 영수증을 총무스님에게 전하면서 '소식'도 알려 드렸다.
"떡이 옆집 아저씨를 따라 왔대요."
"아이고, 사장님이 바쁜가 보네?"
총무스님에게서 떡 값을 받아 마당으로 나섰는데, 순간 '헐'할 상황이 벌어졌다.
마당에 모두 세 분의 '아저씨'가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옆집 아저씨'가 누구인지 몰랐다.
①법당에서 막 나오고 있는 아저씨는 정비소를 운영하는 분.
떡상자가 법당으로 가야하므로 평상시 기도를 열심히 하는 정비소 처사님이 떡을 가져 왔을 수 있다.
②후원 모퉁이를 돌아서 나타난 낯선 아저씨 1번 분은, 양장 재킷을 입은 것으로 보아
단순한 상춘객은 아닌듯 했다.
마나님을 모셔다 드리러 온 처사님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동선으로 보아 법당에서 나오는 길일 수도 있으므로, 이분이 혹시...?
③마당 한 가운데, 법당 앞에 있는 등산복 차림의 낯선 아저씨 2번 분 역시
법당에서 나와 우리 절 전경을 구경하고 있는 와중일 수 있다.
떡을 갖고 온 핑계로 봄 산을 만끽 중일 수도 있으므로, 이 분이... 옆집 아저씨?
어느 분에게 떡 값을 드려야 하나 3초 정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여행 중에 써 먹던 수법이 통했다.
바로바로... "돈 흔들기!"
콜롬보에서 아누라다푸라로 가는 버스표다.
공항 ATM에서 돈을 찾아서, 환전소 직원에게 갖은 아양을 떨어서 잔돈으로 바꾸긴 했지만,
현지 물가가 어느정도인지, 돈 가치가 어느만큼인지 짐작도 못했던
여행 첫 날.
무작정, 그러나 나름 갖은 눈치 끝에 AC버스에 올라탔는데,
무뚝뚝한 차장은 손부터 내밀었다.
말 그대로 "돈 내놔!"였다.
그리고 난 뭣도 모르고 2000루피 짜리를 흔들었던 새내기 여행자 시절이었다.
첫 날 수업료인 셈 치고 차장에게 바가지 쓸 준비를 한 채 큰 돈을 흔들었는데,
옆 자리 총각의 도움으로 1000루피 거스름을 받았다.
그 때 배웠다.
웬만한 일에는 언어가 별반 필요치 않다는 것을.
적당한 수준의 돈을 살짝 흔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요건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끊었던 버스표다.
세쿤데라바드 역에서 룸비니 공원까지 가는 시내 버스를 탔는데,
어찌나 버스 소음이 컸던지 차장이 하는 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스리랑카와는 많이 다른 숫자의 가치 때문에 한참 혼란을 겪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한 사람에 12루피, 두 사람이 24루피면 될 일을 100루피를 흔들었다가
잔돈이 없다는 뻔한 거짓말 앞에서 또 한 번 바가지를 쓸 뻔 했다.
물론... "아, 그래요?" 하면서 내가 잔돈으로 차비를 계산했다는...
여긴 산치.
산치 대탑 참배를 마치고 큰길로 내려온 오후에 거리 풍경이 달랐다.
아침에는 휑~했는데, 그 사이 장사들도 사람들도 거리에 많이 나와 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띈 말밤 장수와... 저 옆에는 땅콩 장수가 있다.
처음엔 땅콩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것에 눈길이 갔다.
말밤-물밤이라고도 하던데,
찐 말밤을 까기 좋도록 작두로 손질하고 있는 것을 한참 구경하다가,
맛보기로 하나 얻어먹기까지 하고서
한 봉지 사서는 숙소에 와서 맛나게 먹었었다.
좌판에서 뭘 살 때도 '돈 흔들기'는 유창한 흥정에 버금갈만큼 유용하다.
영어를 못하는 상인이거나, 물건 양이 마음에 안 들 때
다투려 들지 말고, 손에 들고 있던 루피 한 장을 빼고 주면
포기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하고 봉지를 건네는 경우가 많다.
엄마는 우리나라에서도 물건 값을 깎으려 들지 않는다.
자기 손으로 봉지에 한 줌 더 집어 넣는 것도 치사하다면서 하지 않는다.
웬만하다 싶으면 내가 손해 좀 보지 뭐-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그 얼마간으로 내가 손해를 본다고 해야 얼마나 볼 것이며
그쪽이 이익을 얻는다고 해야 얼마나 부자가 되겠냐-는 역연한 인과를 절대적으로 믿는다.
스인네 삼국 여행을 하면서, "우리돈 몇 백원인데 뭐!"라고 쏘 쿨하게 말해 놓고 돌아서서
"아 유 해피?"하고 쏘아 준 일도 몇 번 있다.
"너 나한테 바가지 씌워서 행복하냐?"
노력을 기울인만큼의 정당한 대가, 그것을 지폐 몇 장으로 대신할 수 있는 간편함 앞에
참 많이 치사해지기도 하고 더럽다 싶을 때도 있다.
바가지인 줄 알면서도 뒤집어 쓰는 것이 맞는지,
맞서 싸워서(!) 정당한 결과를 쟁취해야 하는지...
돌아온 지금도 모를 일이다.
'정가제'를 앞세워 당당하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는 우리나라 마트 계산대를 생각하면 말이다.
어쨌거나,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려가며 떡을 만들어 준 떡집 사장님이 보내준 영수증에 적힌만큼의 돈은
②번 아저씨가 가져갔다.
"스님, 제가 떡 가져 왔심더."
하고 돈을 들고 있는 내게로 와서 떡 값을 받아 가셨다.
웬만한 상황은 웬만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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